존·네프는 대표적인 가치 투자가인, 워런·버핏에 이어투자계의 전설에서 인기 성장주보다 저평가된 기업을 찾고 장기적으로 투자하고 시장 수익률에 대부분 이긴 인물이다.본서의 제1부에서는 그의 어린 시절과 윈저에 대한 열정을 보인다.전 재산 20달러에 불과하다, 대학을 갓 졸업한 23세의 가난한 청년이었던 존·네프는 기회의 땅을 요구하고 뉴욕으로 떠났다.그러나 뉴욕에서 직업을 찾기 어렵고, 클리블랜드에 있는 내셔널 시티 은행 증권 애널리스트로 입사하게 된다.옛날 그대로의 주식에 주로 투자하는 성향은 누군가가 일러줬기 때문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체득한 것이다.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실적을 보증할 수는 없다.투자의 성공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굽히지 않는 인내가 필요하다.-p.39-
존·네프는 어릴 때부터 논쟁에서 지는 걸 싫어해서 어머니는 가만히 있는 도로 표지판과 다투게 될 어린이라는 평가까지 냈다.훗날 이 평가는 존·네프가 끈질긴 가치 투자계의 전설이 태어났다는 점에서, 다시 말하면”주식 시장을 상대로 싸우는 사람”으로 제대로 맞아떨어진 것이다.유년 시절에 경험한 많은 경험은 제가 성장하고 투자 업계에 종사한 뒤에도 소중한 교훈으로 작용했다.인내,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에게 동정, 절약, 의지, 성실, 치밀한 분석 등 이들 모두 성공적인 투자 전략의 발판이 됐다.-p.40-
존 네프는 사업가의 피를 이어받았다. 가족적 영향으로 보면 정내후 가족 중에는 친정과 외가 가족 모두에 사업가 다수였기 때문에 사업 진입 장벽이 낮았던 셈이다.그는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해군 복무를 지원했는데 유능한 세일즈맨이었던 아버지가 에이로익익먼트 주식을 사라고 권하면서 그는 해군에 입대해 난생 처음으로 주식시장 일원이 된다. 군을 제대한 그는 톨레도대에 입학해 대학에서는 수석 졸업의 영예를 안았지만 가장 관심 있던 과목으로 시드니 로빈스 교수에게서 배운 2과목을 꼽았다. 로빈스 박사는 뉴욕 컬럼비아대에서 톨레도대로 와 잠시 재직한 뒤 다시 컬럼비아대로 돌아와 교육 인생을 마쳤다. 그는 펀더멘털 분석학파의 대가인 벤자민 그레이엄과 데이비드 도드의 후계자로 자타공인 사람이었다.-p.70-
로빈스 교수가 공교롭게도 벤자민·그레이엄의 후계자로 존·네프도 벤자민·그레이엄부터 시작된 가치 투자를 계승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존·네프는 클리블랜드의 내셔널 시티 뱅크에서 6개 업종을 담당하고 있다.여기서 존·네프에 영향을 준 것은 아트·버나 스이지만 그는 고전 경제학과 인간의 본성에 대한 회의적 시각의 조합으로 경제를 바라본 인물로 존·네프는 그를 통해서 역행 투자의 원리를 깨닫게 된다.그 뒤 존·네프가 필라델피아의 웰링턴에 합류한 1963년 당시 윈저 펀드는 어려운 형편이었다.그러나 그가 합류한 뒤 31년의 임기 중에 22번이나 시장을 추월하지만 2부에서 언급하는 윈저에서 고수한 존·네프의 투자 스타일은 다음과 같다.낮은 주가 수익률 7%이상의 펀더멘털 성장 배당 수익률 방어(개선) 총수익률과 PER의 긍정적 관계 주도 PER을 감안한 순환 노출 확실한 성장 기업 강력한 펀더멘털-p.121-
내가 남들이 무시하는 종목에 각별한 관심을 가진 가장 큰 이유는 주식시장 분위기가 인기 종목에 쏠리면서 우량기업의 가치가 저평가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전부는 아니지만 한번 파도가 몰아치면 많은 기업이 이전보다 훨씬 좋은 평가를 받는다. 이러한 기업은 과거에도 견실하게 수익을 창조해 왔지만 군중심리에 휘말린 투자자들 때문에 무시되어 온 경우에 해당한다.-p.124-존·네프의 투자 방식은 다른 사람이 좋다고 해서 사는 주식 종목보다는 비인기 저가 가치 주에 집중한다.특히 시장이 이 주식의 진가를 알아보고까지 끈덕지게 보유하는 방법을 택한다.다만 그는 PER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성장세를 보이는 기업, 즉 매년 7%이상의 성장을 기록하면서도 PER이 낮은 기업을 저 평가 기준으로 여기에 대중의 관심을 끌 만한 배당 수익이 있는 경우를 최선으로 간주했다.그가 수익 성장률을 산정하는 기간은 5년으로 나름대로 장기간을 기준으로 했다는 생각이 든다.수익 성장률을 산정하는 적절한 기간에 대해서도 물론 논의가 필요하다.우리는 5년을 기준으로 삼았다.우리가 해결한 대부분의 사건은 시간적으로 5년 이내에 해당하고 5년을 초과하는 장기적 재무 성과는 윈저의 장기 투자 실적을 견인하는 역할을 했다.-p.133-무엇보다 ‘도로 표지판과 말다툼을 할 정도로 논쟁을 좋아했던 성격’이 자신의 직업 인생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줬다고 밝히는 정네프. 그 PER 투자자가 올바른 판단을 내렸다고 해서 주변의 갈채를 받는 일은 드물다. 만약 당신이 100억달러 규모의 펀드를 운용하고 저PER 전략을 추구한다면, 분노한 투자자들로부터 쏟아지는 항의 편지와 수많은 비평가들의 비난 속에서 길을 잃을 수도 있다.다만 저자는 “남과 다르더라도 무조건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이라며”진정한 역행 투자가는 의식의 문을 열고 과거에서 배운 교훈을 소중히 하고, 항상 유머 감각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이와 함께 저자는 일정 부분을 현금으로 비축의 중요성을 잊지 않지만 시장이 고 평가된 상황에서는 최대 20%까지 현금을 보유했다고 밝힌다.시장이 과열 당연히 투자할 수 있는 종목을 찾기가 어려울 때 일정 부분을 현금으로 비축한 것이다.현금은 바람에 휩쓸리지 않도록 윈저를 지탱하는 훌륭한 닻의 역할을 했다이 책의 3부 가치에 집중한 투자일지에서도 그는 저PER 투자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는 믿음을 나타냈다. 펀더멘털이 긍정적이고 시장의 관심만 있다면 가치투자, 즉 저PER 투자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사실이다. -p.385-31년 6개월 동안 존·네프의 임기 중 윈저 펀드는 시장을 22배나 웃돌면서 윈저 펀드의 총수익률은 S&P500보다 2배 이상을 기록했다.윈저 펀드의 성공 비결, 즉 존·네프의 투자 성공의 비결은 그저 무료인 원리처럼 비치는 저 PER전략을 고수하면서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장기 투자 전략을 고수하면서 몇명의 고성장 주식에 대한 집착보다 “다양한 물감으로 캔버스를 자수한 결과”임, 동시에 수시로 홈런을 기록하면서도 점수의 대부분은 잦은 안타를 통해서 받아들임에 이 책을 통해서 깨닫게 됐다.저도 존·네프처럼 저 PER장기 투자라는 오솔길을 묵묵히 걸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