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문재인 청와대 정무수석 맡기다

정무 수석에 임명된 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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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은 대통령에 당선되자 문재인에게 민정수석직을 맡아달라고 부탁했지만 문재인은 변호사 업무에 복귀할 의사를 수차례 밝혔다. 그러나 2003년 1월 노무현 대통령이 너희가 나를 정치에 보내고 대통령을 만들었으니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자 문재인은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었다.

뉴스1

당시 문재인은 제가 정치를 잘 모르기 때문에 정무적 판단 능력이나 역할은 잘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원리원칙을 지켜나갈 수는 있지 않을까요? 내가 해야 할 역할을 그렇게 생각한다면 나를 쓰세요라고 덧붙였다. 민정수석으로 끝내겠습니다. 그리고 더 정치하라고 하지 마세요.

문재인은 노무현대통령 밑에서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을 지내면서 청와대 생활이 시작됐다.청와대 생활은 힘들고 힘들었다.업무량이 한계용량을 항상 초과하는 느낌이었다. 완벽하게 일을 처리하려는 습관 때문에 항상 수면 부족이었다. 심지어 치과 치료를 받기 위해 드릴이 어금니를 긁고 있는 상황에서도 졸음이 쏟아졌다.이렇게 무리한 결과 민정수석 1년 만에 이를 10개나 뽑아야 했다. 결국 문재인은 녹내장 고혈압 등 건강 악화와 함께 치아가 10개나 빠지고 임플란트를 하면서 발음이 나빠졌다. 결국 청와대에서 근무한 지 1년 만에 청와대를 떠나야 했다.문재인그는 민정수석을 그만두고 편안한 마음으로 네팔 히말라야오 트레킹을 떠났다.문재인이 네팔로 떠난 지 2004년 초 대통령의 선거 중립 의무 위반과 측근 비리 등에 대한 야당의 사과 요구를 거절하자 야당인 한나라당과 새천년민주당이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소수 여당인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반대를 막은 채 국회 본회의에 탄핵소추안을 기습 상정해 찬성 193, 반대 2로 탄핵소추안을 가결시킴으로써 국무총리 고건이 직무를 대행했다.그러나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자 이에 반대하는 국민의 비난이 쏟아졌고 전국 곳곳에서 탄핵 반대 촛불시위가 잇따랐다. 문재인은 연락이 끊긴 상황에서 영자신문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식을 듣고 곧바로 귀국해 변호인단을 구성했다.그해 4월 15일 치러진 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이 과반수가 넘는 152석을 차지하는 결과를 낳았다. 또 같은 해 5월 14일 헌법재판소가 탄핵소추안에 대해 기각 결정을 내리면서 두 달 만에 대통령직에 복귀했다.문재인그는 2005년 다시 청와대에 들어와 시민사회수석, 민정수석을 거쳐 참여정부 마지막 비서실장을 지냈다.청와대 내에서 그의 별명은 왕 수석이었다고 한다.수석 중에서도 최고수석이었고, 연하 직원들에게 반말을 한 번도 써본 적이 없어 늘 공손하고 정중했다고 한다.더 이상 볼 것도 없다. 다시 언급해야 입만 아픈 일이다. 아무리 찾아봐도 마찬가지다. 깨끗하고 조용하고 성실하다. 더 이상의 평가도, 더 이상의 평가도 없었다.비서실장 시절 이해찬 국무총리가 부적절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과 내기 골프를 쳤다는 소식을 듣고 고심하던 노무현 대통령에게 해임을 촉구했다.청와대에서 근무하던 시절 모든 직원에게 존댓말을 쓰는 것으로 유명해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기보다 다양한 의견을 듣고 상황을 명확히 정리하는 업무 스타일을 보였다.민정수석은 국민여론 및 민심동향 파악하여 공직사회기강 관련 업무보좌, 법률문제 보좌, 민원업무를 처리한다.따라서 국민과의 소통을 추구해야 하기 때문에 열린 사람이어야 한다. 그리고 예쁜 인물을 골라 추천하고 부정한 일이 티끌이라도 없어야 할 깨끗한 사람이어야 했다. 그리고 법률문제를 보좌해야 하므로 법에도 밝아야 한다. 누구도 쉽게 감당할 수 없는 자리다. 이 자리에 문재인은 노무현을 임명했다.문재인은 권력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정말 노무현 대통령이 외롭지 않을까 싶어 청와대에 왔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대통령 중 누구도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문재인을 처음 만난 사람들은 보통 두 가지 인상으로 이야기한다. 하나는 그의 표정은 항상 변하지 않고 친절하다는 것이다. 문재인의 사진을 보면 항상 표정은 옅게 웃거나 무표정으로 일정하다. 문재인은 아무리 다급했을 때도 표정이 변하지 않았다.정무수석으로 언론에 등장했을 때나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을 받았을 때나, 노무현 대통령 가족의 여러 법적 문제 앞에서도 그는 늘 한결같은 모습으로 기자들을 대했다. 표정은 늘 한결같았지만 말하는 것과 행동을 보면 언제나 친절이 묻어났다.그래서 가지들 사이에서 문재인의 별명은 ‘친절맨’으로 불렸다. 그는 기자들과 대화를 하거나 일할 때도 일관된 표정이지만 할 말은 다 하고 아쉬울 것은 삼가며 노무현 대통령을 지켰다.노무현 대통령의 이동에는 늘 많은 기자가 따라왔다.세계 한인 저널리스트 협회그리고 카메라에 찍힌 노 대통령 뒤에는 늘 엷게 웃거나 무표정한 문재인이 함께 있었다. 문재인그는 자신을 리더형 인물이라기보다는 참모형 인물에 적합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래서 앞으로 나서기보다는 뒤에서 그림자처럼 늘 묵묵히 서 있는 문재인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문재인이 청와대에서 일하는 동안 처리한 한미 FTA, 북핵 문제, 이라크 파병, 남북 정상회담 등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기 때문에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울 수 있게 됐다. 그리고 그는 욕심이 없었기 때문에 청와대를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었다.출처_ (저서) 문재인 신드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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